다이싱과 본딩, 웨이퍼 후공정 이해하기

패키징을 공부할 때 플립칩, WLP, TSV 같은 화려한 기술들을 먼저 봤는데, 정작 그 전에 있어야 할 기본적인 단계를 놓치고 지나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웨이퍼 위에 완성된 칩들을 대체 어떻게 하나씩 분리하는 건지, 그리고 이걸 기판에 어떻게 실제로 고정하는 건지 궁금해져서 다이싱과 본딩이라는 기본 공정을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화려한 기술만 좇다가 오히려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를 놓치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부끄러웠다. 웨이퍼 하나에는 보통 수백에서 수천 개의 칩이 격자 모양으로 촘촘하게 붙어 있다. 이걸 하나하나 분리해야 개별 제품으로 쓸 수 있는데, 이 분리 작업을 다이싱(Dicing)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이름 그대로 주사위처럼 작은 조각으로 자른다는 의미였다. 웨이퍼를 자르는 일이 생각보다 정교했다 처음엔 그냥 칼로 종이 자르듯 쓱 자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웨이퍼는 실리콘이라는 단단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소재라서, 일반적인 절단 방식으로는 미세한 균열이 생기거나 칩 자체가 손상될 위험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아주 얇은 다이아몬드 블레이드를 초고속으로 회전시켜 절삭하는 방식을 쓰거나, 레이저를 이용해 절단하는 방식을 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리를 자를 때도 아무렇게나 힘을 주면 깨지기 십상인데, 실리콘 웨이퍼는 그보다 훨씬 예민한 소재라는 걸 생각하면 이런 정밀한 절단 방식이 필요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레이저 다이싱 방식이었다. 웨이퍼 내부에 레이저로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둔 다음, 이후 물리적인 힘을 가해 그 선을 따라 깨끗하게 분리하는 방식이었는데, 물리적 절삭보다 칩 손상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웨이퍼가 얇아지고 칩 간격이 좁아질수록 이런 정밀한 절단 기술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앞서 공부했던 클린룸 얘기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는데, 이 절단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한 부스러기 하나도 주변 칩을 오염시킬 수 있어서 세심하...

전력반도체(파워반도체)란 무엇인가

미래 반도체 기술 공부할 때 질화갈륨(GaN), 탄화규소(SiC) 같은 신소재 얘기를 하면서 전력반도체라는 개념을 스치듯 봤었다. 그때는 그냥 "전기차에 쓰이는 특별한 반도체구나" 정도로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지금까지 공부해온 D램이나 GPU 같은 반도체들이랑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해져서 이번엔 이 전력반도체를 제대로 파봤다. 신소재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라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큰 축이었다.


이름부터 힌트가 있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반도체 대부분은 정보를 저장하거나(메모리) 연산을 처리하는(시스템 반도체) 역할이었는데, 전력반도체는 이름 그대로 전기 자체를 다루는 반도체였다. 전압을 바꾸거나, 직류와 교류를 서로 변환하거나, 전류의 흐름을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게 이 반도체의 핵심 기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다


찾아보다가 놀랐던 건, 전력반도체가 생각보다 훨씬 흔하게 쓰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폰 충전기, 노트북 어댑터, 에어컨,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안에도 전력반도체가 들어가서 전압을 변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벽에 있는 콘센트에서 나오는 교류 전기를 기기가 쓸 수 있는 직류로 바꿔주는 과정, 그리고 그 전압을 기기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 전부에 이 전력반도체가 관여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흔하게 쓰이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이걸 알고 나니 왜 전력반도체를 "눈에 안 보이지만 어디에나 있는 반도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CPU나 메모리처럼 성능 스펙으로 화려하게 소개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사실상 모든 전자기기가 전기를 쓰는 이상 이 전력반도체 없이는 작동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매일 아침 충전기를 꽂으면서도 그 안에 반도체가 들어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충전기 하나하나가 작은 전력반도체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왜 전기차 시대에 갑자기 주목받을까


전력반도체가 최근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를 찾아보니,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직결되어 있었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직류 전기를 모터 구동에 필요한 교류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매우 높은 전압과 전류를 다뤄야 한다.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에너지 손실이 커지고, 결국 배터리 하나로 갈 수 있는 주행거리가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전력반도체의 효율이 곧바로 전기차의 주행거리와 직결되는 셈이었다. 전기차 리뷰에서 "동일 배터리 용량인데 회사마다 주행거리가 다르다"는 얘기를 볼 때마다 그냥 배터리 기술 차이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이면에 전력반도체의 효율 차이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됐다.


여기서 앞서 미래 기술을 공부할 때 봤던 질화갈륨(GaN)과 탄화규소(SiC) 같은 신소재가 다시 등장했다. 기존 실리콘 기반 전력반도체보다 이 소재들이 훨씬 높은 전압과 온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에너지 손실도 적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전기차나 태양광 인버터처럼 고전압을 다루는 분야에서 이 신소재 기반 전력반도체 채택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소재 얘기를 공부할 때는 그냥 미래 기술 정도로만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이미 우리 주변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에 적용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기술이라는 걸 알고 나니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었다. 최근 전기차 급속충전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 배경에도 이런 신소재 전력반도체의 발전이 한몫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든다.


미세공정 경쟁과는 다른 결의 산업이었다


전력반도체를 공부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이 시장이 앞서 공부했던 미세공정 경쟁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CPU나 메모리는 회로 선폭을 얼마나 가늘게 만드느냐가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전력반도체는 오히려 높은 전압과 전류를 견디는 내구성, 그리고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전력반도체는 최선단 나노 공정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성숙한 공정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몇 나노냐가 전부인 줄 알았던 반도체 세계에, 이렇게 나노 경쟁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게 신선한 발견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반도체 산업을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공정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기업이라도, 전력반도체처럼 다른 기준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반도체 산업의 지형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이라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미세공정 뉴스만 좇다가는 자칫 반도체 산업 전체를 절반만 보고 있었던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화려한 스펙 경쟁 뒤에서 조용히 전력을 다루는 이 반도체의 역할도 계속 커질 것 같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산업을 떠받치는 기술도 있다는 걸 이번 공부로 새롭게 배웠다. 다음엔 이 시장에서 국내외 어떤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전력반도체 하나 파고들었을 뿐인데, 반도체를 보는 시야가 또 한 뼘 넓어졌고 이렇게 반도체 산업 지도를 하나씩 채워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개념 하나가 이렇게 큰 산업 이야기로 이어지는 걸 볼 때마다 이 공부가 계속 즐겁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블로그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내가 정한 현실적인 목표 (56세 직장인의 기록)

검색이 되는 글과 안 되는 글의 차이

처음 재무제표를 보면서 느낀 어려움과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