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반도체(파워반도체)란 무엇인가

미래 반도체 기술 공부할 때 질화갈륨(GaN), 탄화규소(SiC) 같은 신소재 얘기를 하면서 전력반도체라는 개념을 스치듯 봤었다. 그때는 그냥 "전기차에 쓰이는 특별한 반도체구나" 정도로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지금까지 공부해온 D램이나 GPU 같은 반도체들이랑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해져서 이번엔 이 전력반도체를 제대로 파봤다. 신소재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라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큰 축이었다. 이름부터 힌트가 있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반도체 대부분은 정보를 저장하거나(메모리) 연산을 처리하는(시스템 반도체) 역할이었는데, 전력반도체는 이름 그대로 전기 자체를 다루는 반도체였다. 전압을 바꾸거나, 직류와 교류를 서로 변환하거나, 전류의 흐름을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게 이 반도체의 핵심 기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다 찾아보다가 놀랐던 건, 전력반도체가 생각보다 훨씬 흔하게 쓰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폰 충전기, 노트북 어댑터, 에어컨,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안에도 전력반도체가 들어가서 전압을 변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벽에 있는 콘센트에서 나오는 교류 전기를 기기가 쓸 수 있는 직류로 바꿔주는 과정, 그리고 그 전압을 기기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 전부에 이 전력반도체가 관여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흔하게 쓰이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이걸 알고 나니 왜 전력반도체를 "눈에 안 보이지만 어디에나 있는 반도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CPU나 메모리처럼 성능 스펙으로 화려하게 소개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사실상 모든 전자기기가 전기를 쓰는 이상 이 전력반도체 없이는 작동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매일 아침 충전기를 꽂으면서도 그 안에 반도체가 들어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충전기 하나하나가 작은 전력반도체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왜 전기차 시대...

EUV 노광장비, 왜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 되었나

미세공정을 공부하다 보니 계속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EUV 노광장비다. "네덜란드 ASML이 만드는 EUV 장비 한 대 가격이 수천억 원", "삼성전자와 TSMC가 EUV 장비 확보 경쟁" 같은 기사들을 보면서, 이 장비가 정확히 뭐길래 반도체 산업 전체를 흔드는 핵심 키워드가 됐는지 궁금해서 찾아본 내용을 정리해본다.


노광공정,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과정


먼저 노광(포토리소그래피) 공정 자체를 이해해야 EUV의 의미가 와닿는다. 노광공정은 웨이퍼 위에 감광액을 바르고, 그 위에 회로 패턴이 새겨진 마스크(레티클)를 놓은 뒤 빛을 쏘아서 회로 모양을 그대로 웨이퍼에 새기는 과정이다. 사진을 인화하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웠다. 빛에 노출된 부분과 노출되지 않은 부분의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고, 이 차이를 이용해서 이후 식각 공정에서 원하는 부분만 깎아낼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더 가늘고 정교한 회로 패턴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파장이 굵으면 아무리 정밀하게 조준해도 회로선이 뭉개지거나 뭉쳐 보이기 때문에, 반도체 미세공정이 발전할수록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EUV, 극자외선이라는 짧은 파장의 빛


EUV는 Extreme Ultraviolet, 즉 극자외선을 뜻한다. 기존에 쓰이던 노광 기술은 파장이 193nm인 빛(불화아르곤, ArF 광원)을 사용했는데, EUV는 파장이 13.5nm로 기존보다 훨씬 짧다. 파장이 이렇게 짧아지면서 예전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초미세 회로, 즉 5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만 이 극자외선은 파장이 짧은 만큼 다루기가 극도로 까다롭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됐다. 극자외선은 대부분의 물질에 쉽게 흡수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렌즈로는 빛을 통과시킬 수 없고, 대신 특수하게 제작된 반사경을 여러 번 거쳐 빛의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극자외선이 공기 중의 산소나 수증기에도 흡수되기 때문에, 장비 내부를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을 보고 그 정밀함에 놀랐다.


왜 이렇게 비싸고 만들기 어려울까


EUV 장비 한 대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 아닌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EUV 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석 방울에 레이저를 반복적으로 쏘아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 방식을 쓰는데, 이 광원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고난도 기술이다. 여기에 빛을 반사시키는 초정밀 거울, 진공 유지 장치, 정밀 제어 시스템까지 결합되면서 장비 하나에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복잡한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할 수 있는 회사가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다른 경쟁사들이 EUV 장비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상업적으로 안정된 양산 수준까지 도달한 곳은 ASML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걸 여러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삼성전자, TSMC, 인텔 같은 첨단 반도체 기업들은 결국 ASML의 EUV 장비를 얼마나 빨리, 많이 확보하느냐가 공정 경쟁력의 출발점이 된다.


EUV가 산업 전체를 흔드는 이유


EUV 장비가 이렇게 소수 기업만 만들 수 있고 공급량도 제한적이다 보니, 이 장비를 먼저 확보하는 기업이 최선단 공정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를 이해하게 됐다. 실제로 삼성전자나 TSMC의 실적 발표에서 "EUV 장비 도입 확대"가 주요 투자 계획으로 언급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또한 이 장비가 국가 간 기술 패권 이슈로도 다뤄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뉴스에서 EUV 장비가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를 자주 봤는데, 이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최선단 공정 반도체 생산 자체가 원천적으로 막힐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장비 하나를 넘어 국가 기술 안보의 문제로 다뤄진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ASML을 왜 아무도 대체하지 못하는지


찾아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ASML이 EUV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ASML 혼자서 이 기술을 다 개발한 게 아니라, 독일의 자이스가 만드는 초정밀 광학 렌즈와 미국의 사이머(현재 ASML 자회사)가 개발한 광원 기술 등 전 세계 여러 첨단 기업들의 기술이 결합되어야 EUV 장비 하나가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됐다. 즉 특정 국가나 기업 하나가 마음먹는다고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나라의 최첨단 기술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왜 각국이 EUV 장비 관련 수출입 이슈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대체 공급처를 만드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EUV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국가는 최선단 반도체 경쟁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도체 하나를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나라의 기술이 얽혀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반도체 공급망이 왜 이렇게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로 다뤄지는지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정리하며


EUV 장비를 공부하면서 반도체 미세공정 경쟁의 실체가 결국 이 빛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자외선 하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고 다루는 기술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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